(26년 9월 28일) ‘2년・3년 차만 합의하자’는 제안,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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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9-29본문
[이지영의 하자 이야기]
이지영 변호사입주하고 두 해쯤 지나면 단지 안에 상주하던 시공사 협력업체 사무실이 슬슬 철수를 준비합니다. 그 무렵 시공사 담당자가 입주자대표회의를 찾아와 이런 제안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하자는 다 처리했으니 2년 차와 3년 차 하자만 정리하고 마무리하자는 것입니다. 보상금 액수까지 제시되면 소송까지 가지 않고 끝내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오지요. 그런데 이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합의서에 무엇이 적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2년 차와 3년 차 하자만 정리하자’는 제안인데 막상 받아 보면 합의서에 이런 문구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시공과 오시공을 포함한 일체의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며 향후 어떠한 이의나 소송도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문장입니다. 그런데 미시공과 오시공, 그리고 외벽 균열 같은 항목은 5년 차와 10년 차 담보책임기간에 걸리는 하자입니다. 2년 차와 3년 차를 정리하자면서 아직 오지도 않은 기간의 권리까지 함께 넘기는 문장이 들어 있는 셈이지요.
동의서도 함께 봐야 합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39조는 공용부분의 담보책임 종료확인서를 작성하려면 입주자에게 개별 통지하고 단지 게시판에 20일 이상 게시해 의견을 들은 뒤 입대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면서, 전체 입주자의 5분의 1 이상이 서면으로 반대하면 의결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 받는 동의서에도 합의서와 같은 포기 문구가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합의서만 고치고 동의서를 그대로 두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문구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나중에 소송을 제기하면 시공사는 부제소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은 부제소 합의가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포기와 같은 중대한 소송법상의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봤습니다. 소가 부제소 합의에 위배된 경우 법원은 직권으로 적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자가 있는지 따져 보기도 전에 소가 각하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같은 판결은 한계도 긋고 있습니다. 부제소 합의는 합의 당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2년 차와 3년 차 하자를 정리하던 시점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외벽 균열, 마감을 뜯어내야 확인되는 미시공과 오시공까지 예상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구가 아무리 넓더라도 그 효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는 따져 볼 여지가 있는 것이지요.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입대의에 애초에 그 권리를 포기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8다84229 판결은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9조에 의한 하자담보추급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분소유자에게 귀속하므로 입대의는 사업주체에 하자보수를 청구할 수 있을 뿐 그에 갈음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지 못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닌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서명이 그대로 효력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시행령 제39조는 담보책임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담보책임 종료확인서를 작성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5년 차와 10년 차 담보책임기간이 남아 있는데 그 부분까지 끌어들여 종료를 확인하는 서면은 이 규정과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요. 합의 자체를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범위를 반드시 좁혀 적어야 합니다. 이 합의는 2년 차와 3년 차 담보책임기간에 속하는 별지 목록 기재 항목에 한정하며 5년 차와 10년 차 담보책임기간에 속하는 하자 및 미시공・오시공에 관한 권리는 그대로 유보한다는 취지를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체’라든가 ‘향후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아니한다’와 같은 포괄적인 문구는 삭제를 요구하고 동의서 양식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합의가 소송보다 나쁠 이유는 없습니다. 빠르고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단 몇 줄의 문구가 5년 차와 10년 차의 권리를 함께 넘겨 버릴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몇 줄은 보상금 액수만 들여다보는 자리에서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합의서와 동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하자 처리의 전 과정을 함께 짚어 줄 파트너 법무법인에 문구를 검토받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의 검토가 남은 8년을 지켜 줍니다.
법무법인 정필 ☎ TEL 02-584-5888